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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맠 이게 아닌데 A

데즈리 2017. 3. 19. 14:20

우리학교는 완벽히 서향이다. 그말은 아침에는 거대한 건물에 가려져서 빛이 좆도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방과후에는 정문 복도가 지옥불만큼 뜨거워진다는 얘기기도 하다. 물론 던전처럼 반지하에 지은 학교들보단 차라리 나았지만 빌어먹을 학교는 창문도 쓸때없이 많았다. 쓸때없이 넓은 잔디. 쓸때없이 많은 창문. 쓸때없이 많은 인간들. 겨울은 또 쓸때없이 추웠다. 뭐 당장 눈도 안올꺼면서 칼바람이 자비없이 얇은 윈드브레이커와 트레이닝복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아우 썅. 하루종일 교실 속에서 차이니즈 테이크아웃속 찜 야채들처럼 구워지다 영하의 날씨에서 운동을 하려니 욕이 나왔다. 

멀리 출발지점에서 코치가 손을 마구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눈이 온다는 말은 금방 들었다. 조금 뒤에서 뛰던 제노가 내옆에 멈춰 숨을 골랐다. 찬 바람에 볼이 빨개져있었다. 

“연습 끝난거지?”

“아마.” 

“눈태풍 온다던데 굳이 연습시키는건 뭐야.”

제노는 그냥 웃었다. 더이상 말할 힘도 없어보였다. 트랙은 제노가 제일 잘하는 스포츠는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날렵한 편인 나에 비해 제노는 더 묵직하고 힘을 쓰는 스포츠가 더 잘 어울렸다. 테니스나 야구나 농구같은, 내가 못하는 것들. 저번시즌 바시티 팀에 나는 뽑히고 자신은 뽑히지 못해서 더 그런걸지도 몰랐다. 이제노는 그런 성격이었다. 묵묵히 몸이 부서져라 했다. 뭐든 진지하고 열심히 했다. 분명 이번에도 나보다 한두랩(lap)은 더 돌았을꺼였다.

말없이 입구에 도착하니 둘다 대충 숨은 안정되있었다. 찬바람때문에 바싹 마른 목구멍을 축이면서 코치가 떠드는 모습을 보았다. 가만히 서있다보니 급작스레 피곤해져 눈가를 꾹꾹 눌렀다. 해는 꽤 눈부셨는데 바람이 예사롭지 않은게 정말 눈이 오긴 오나보다 생각했다. 

코치가 말을 끝내자 다들 기다렸다는듯이 락커룸으로 뛰어갔다. 뛰어갈 힘도 없는 나와 제노는 무리 제일 끝에서 걸었다. 덕분에 나오기도 제일 늦게 나오게 됬다. 핸드폰을 체크하니 아직 네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정도면 존나 선방이었다. 물론 나만 기쁜건 아니었는지 다들 오늘따라 시끄러웠다.

“혁, 시니어들이 근처 칠리스 가서 스노우데이 기념 밥 먹자는데, 같이 갈래?”

같이가길 꽤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어…글쎄. 사실 이제노의 의중을 알꺼같아서 그닥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나 아까 수학반에 코트 놓고왔어. 그거 챙겨가야되서 늦을꺼같아.”

안가겠다는 말은 안했지만 제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그대로 돌아섰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시니어 케일라가 제노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못본척 고개를 돌렸다. 가끔은 진짜 개새끼가 될수도 있는 애였다. 나는 괜히 눌러붙은 앞머리를 정리하는척 발걸음을 돌렸다. 

정문 복도를 따라 걸을수록 조용해졌다. 창틈 사이로 해가 과포화되 흘러내렸다. 수학반은 하필이면 쓸때없이 멀었다. 좆같은건 왜 한번에 다같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아 시발. 방과후인데 난방이 쓸때없이 높았다. 

이층 계단을 통과하자마자 좀 역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불알을 걸고 누가 토하는 사운드였다. 아 시발. 더이상 움직이기가 두려웠다. 금새 등골이 서늘하게 식었다. 내가 혹시나 보게 될 무언가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흡.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굉장히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끄트머리에는 어떤 애가 자기 몸통의 두배 되는 쓰레기통속에 머리를 타조처럼 쳐박고 있었다. 우선 근처에 토사물의 흔적이 있는지 훑어보고 세이프라는걸 확인한뒤 타조에게 다가갔다. 남자애였고, 누구인진 안보였지만 삐죽나온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있었다.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 삼초정도 고민하다 손등을 몇번 두드렸다. 

“저…괜찮으세요?”

남자애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의외로 동양인이었다. 입가는 어울리지 않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눈물로 붉어진 눈가와 흐린 눈동자를 한 남자애는 내가 안보인다는듯 눈을 찌뿌렸다. 남자의 굽지 않은 도자기같이 창백한 피부위로 더운 노을색이 떨어져 음영을 만들었다. 

“괜찮을꺼같…fuck.”

남자는 말하다 말고 다시 쓰레기통으로 시선을 돌리고 헛구역질을 했다. 목덜미가 새빨개질 정도였다. 불쌍해서 등을 좀 두드려주다 그 애의 것으로 보이는 물병을 발견하고 손에 쥐어줬다. 존나 성자가 된 느낌이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다시 불편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상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웃었다. 그거 물 아냐. 느릿느릿 상체를 일으키며 나를 응시하는 남자는 입가를 후드티 소매로 훔치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죽을꺼같이 질렸던 얼굴이 좀 사람같아졌다.

“어, 누구 온다.”

남자애는 무서운 속도로 눈을 깜빡이다 내 손목을 잡아채고 바로 뒤 남자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나는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도 몰랐는데. 문을 세차게 닫은 후 확실하게 잠근 남자애는 그대로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거 보드카야. 걸리면 죽어.”

남자애가 물병을 흔들어보이며 말했다. 해사한 얼굴로 깜짝 놀랄소리를 한 남자는 분명 내 표정이 웃겼는지 아학학 거리는 소리를 냈다. 학학대는 소리를 낼때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럴땐 어떻게 반응해야되는지 몰랐다. 뭐 이런사람이 다있어.... 괜히 남자애가 웃음을 멈출때까지 바지에 손만 문질렀다. 아학학. 미안해. 남자애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일으켜달라는 뜻이었다. 

힘을 주어 끌어당기니 생각보다 너무 가볍게 일어나 당황하다, 중심을 잃고 내 어깨로 떨어지는 몸뚱이에 또 당황했다. 남자애의 몸이 뜨거웠다. 정문 복도의 달궈진 락커들보다도 뜨거운것 같았다. 

“Shit…미안미안.”

 남자애는 재빠르게 몸을 떼냈다. 미안하단 말만 벌써 몇번을 했는지. 물론 안미안해 했으면 그것도 그것대로 싫었겠지만.  한숨을 내뱉는 얼굴에는 이제 홍조가 올라와있었다. 보드카, 토사물, 붉어진 얼굴과 흐릿한 눈가. 나도 똑똑한 편은 아닌데 도대체 이정도로 당연한 모습을 하고 학교에 올만한 멍청이가 있는진 몰랐다. 정학당하고 싶거나 그런 미친새끼가 아닌이상.

“우리 학년은 아닌거같은데.”

“미안. 마크라고 해. 주니어.”

“아…나는 동혁. 그냥 혁이라고 부르면 돼. 소포모어고.”

오우, 반가워! 마크가 아까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방금 지나온 복도처럼 쓸때없이 밝은 인간이었다.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등허리가 삐걱이는걸 깨달았다. 시큰대는 발목은 조금 전에 접지른거같았다. 역시 좆같은일은 한번에... 하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대낮에 학교에서 보드카에 취해 몸도 못가누고 토한 사람을 두고 마냥 집에 갈만큼 오늘 하루가 좆같았던거도 아니라.

“일단 학교부터 나가야겠다.”

우습게도, 나도 자꾸 웃게됬다. 아 이게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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